2000~2009년

밀레니엄 시대라고 하는 2000년대의 우리교회의 역사 가운데 주목할 부분은 교육관 증축과 선교의 확장 그리고 순과 경배와 찬양의 도입 등이었다.2000년대가 시작되면서 주일학교의 확장과 교회의 성장은 교육관의 증축을 논의하게 하였다. 교회는 이를 위해 미리미리 기금을 모으고 준비를 하였다. 중직자들을 중심으로 건축위원회를 짜고 교육관의 안전도 검사부터 실시하였다. 교회는 170평의 건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고 수년간 중직자들의 의견을 수렴했다. 전문가의 진단을 거쳐서 1개 층을 올리기로 결정을 한다.

2007년 4월 7일 오랜 기간 숙의를 거쳐서 마침내 기공에 들어가 총공사비 6억5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1개 층을 올리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인 2007년 9월 9일 준공감사예배를 드리게 된다. 교육관의 증축을 계기로 지하에 있던 식당을 1층 자리로 옮겨서 배치하고 올린 새로운 공간에는 중등부와 영아유치부를 위한 주일학교 공간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2002년 3월에 우리교회는 선교한국과 협력으로 부산서 처음으로 PSP 훈련과정을 개설했다. 지역 교회에 개설된 PSP의 훈련과정으로서는 드물게 매년 빠지지 않고 강좌가 개설 되어 훈련생을 배출하고 있다.2002년 5월 중국선교에 다시금 기회를 주셨다. 한족교회인 홍릉보 교회와의 연결이 그 것이다. 우리교회는 특별 헌금을 전달해서 한족교회당을 지어주고 그 헌당식에 담임목사와 선교위원장과 교인들이 참석하여 교회는 선교의 의지를 나타내었다.

2003년에는 세 번째 선교사가 파송된다. 홍성빈 목사였다. 교회는 기쁨으로 2003년 2월 2일 중앙 아시아의 키르기스 지역으로 파송하였다. 홍선교사는 선교 접촉점과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1차 임기의 임무를 완수했고 2기 사역에 들어간 홍선교사는 소속된 선교단체인 웩에서 현지의 필드책임자라는 중책을 맡아 중앙아시아 3개국에 파송된 30여명의 서방 선교사들을 돌보면서 사역을 확대하고 있다.2004년 12월 5일 우리교회 선교역사에서 획기적인 역사가 이루어진다. 대청교회와 이웃한 장전제일교회가 이날 오전 예배 시 선교협약을 체결, 향후 5년간 양 교회는 아무런 조건 없이 협력 기로 약속한다. 분열과 반목 경쟁주의에 물든 교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 우리교회는 이로써 ‘조선족의 신학교육을 통한 소수민족전도’라는 프로젝트에 동역하게 된다. 양 교회는 조선족을 교육해서 사역자로 키운 뒤 그들이 남방의 소수민족에게로 나아가 가르쳐서 소수민족 지도자들을 키운 다음, 그 소수민족 지도자들이 스스로 선교하게끔 하는 선교전략을 세웠다.

먼저 운영위원회를 출발시킨 뒤 정규 학제 성경신학원으로 전환하고 커리큘럼과 교수요원의 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하였다. 양 교회는 1차로 동북지방의 신학반 과정을 통해서 16명을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 9명이 목회 사역에 들어가는 성과를 보았다. 그리고 이 신학원 출신의 3명의 전도사를 남부지역으로 전략적 사역자로 파송하고 그 가운데 1명을 현지 인가된 신학교에 입학시켜 현지 핵심인물로 양성하였다. 그를 졸업시켜 현지인교회를 개척하게 한 뒤 이어서 남부지역에서 2005년 장청신학원을 개원하고 본격사역자 양성에 들어갔다. 참여해준 교수요원들은 관련 부분에 전문적인 식견과 실력은 물론 목회의 결실을 이룬 신학대학교 교수와 목회자들을 주의 깊게 선정하였다. 총신대와 고신대의 성경신학전공교수와 성경신학으로 정규 학위를 딴 목회자를 파송하였다.

한편 장년 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의료와 봉사 등의 단기 선교팀의 조직도 이 시기에 계속 되었다. 2005년 1월 태국, 2006년 7월 아프가니스탄, 2006년 10월 태국, 2007년 8월 청년부의 일본, 2007년 9월 키르기스에 단기 평신도 선교팀을 파송해서 사역을 감당하였다.
우리교회 선교역사에서 뺄 수 없는 부분은 2007년도에 이룬 선교사들을 위한 안식관 마련이다. 교회 근처 금정구 구서동 우성아파트 30평형의 안식관은 선교사들의 눈물을 주님을 대신해서 닦아주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 그동안 여러 명의 선교사들이 ‘본국사역’의 기지로 우리교회 안식관을 이용했고 지금도 선교사가 거주하고 있는데 거주신청이 끊어지지 않고 있어 이런 일에 대청교회 성도들의 귀한 헌금이 사용되는 것은 정말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또 하나 2008년에는 중국 땅 대륙의 남쪽에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하였다. 남쪽에서 신학생을 훈련하고 키우기 위해서 반드시 훈련센터가 필요하던 차에 한 무명의 성도가 드린 소중한 헌금이 제자리를 찾아서 간 것. 24평 규모의 새로 신축한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하였고 현지 파트너인 사역자가 입주를 하였다. 감사한 것은 이 게스트 하우스가 거점이 되어서 현지 사역자의 호구문제가 해결되었고 이를 기점으로 교회개척에 활력을 불어넣게 되었다는 점이다.

2008년 특이하게 시작된 중국인 유학생 주일학교가 우리교회의 선교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도 감사한 일이다.2009년 6월부터 대청 한글다문화학교를 시작하였다. 이 땅에 들어온 나그네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관심과 이방의 나그네들에 대한 거룩한 부담으로 시작한 대청 한글 다문화학교는 네팔을 비롯 베트남 중국 캄보디아 태국 등 동남아 각국의 노동자들을 섬기는 사역이다.
하나님은 세계 만민이 만국어로 예배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교회 본당에 외국인이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2개 국가 언어를 동시통역 시설을 구비해 현재는 영어와 네팔어 2 가지 언어를 동시통역하면서 외국인들과 같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여 열방과 함께 하는 현장을 주일마다 경험하게 되었다.2005년에 도입, 2013년까지 운영한 순의 도입은 2000년대에 가장 크게 변화를 준 부분이다. 한국교회의 성장둔화에 고민하던 목회자들이 앞다투어 도입한 교회의 동력으로서의 순은 구역조직에 변화를 준 것이었다. 처음에는 가정교회라는 이름을 사용했으나 교회는 순으로 이름을 바꾸고 현대교회의 고질적 문제인 교제의 부분을 확대하기에 애를 썼다. 이를 통해 교인들간에 서로 돌아보고 새로운 신자들을 양육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이무렵 경배와 찬양도 교회 내에 공식적인 분야로 들어오게 된다. 스캇브레너 등을 초청해서 2박3일간 집회를 유치했다.
2009년 말 현재 장년 출석 1100명 내외에 교회학교 550명 내외를 기록함으로써 지난 1999년 말 대비 장년은 약 300명 가량 늘고 주일학교는 정체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